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6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문단 편집) === 드레스덴 회담 === 나폴레옹은 훗날 세인트헬레나에서 1813년 일시 휴전을 받아들인 것을 인생 최대의 실수라고 매우 후회하는데 --이베리아, 러시아 원정이 아니라?-- 자신의 군대를 교육, 훈련하고 보충, 재편성할 동안 동맹국의 군대는 더 강화되었다는 것. 실제로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의 의도는 당연히 오스트리아가 동맹에 참여할 시간을 벌려는 수작이었으므로 나폴레옹의 주장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나폴레옹도 피해가 크게 누적되어서(2만 5천 명의 사상자와 9천 명의 부상자) 휴식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다. 게다가 이 시기엔 나폴레옹과 동맹군이 모두 오스트리아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40만 이상의 예비병력이 있던 오스트리아가 어디에 붙느냐에 따라 전략의 추가 확 기울어져 버리기 때문이었다. 나폴레옹은 마리 루이즈를 섭정으로 임명한 상태에선 오스트리아가 개전하지 않으리라 믿었지만 실제론 전혀 아니며 나폴레옹에 대한 메테르니히와 프란츠 2세의 원한이 매우 깊었다. 이 때문에 [[작센]]의 [[드레스덴]] 마르콜리니 저택 중국실에서 정오부터 오후 8시 30분까지 나폴레옹과 비밀 회동을 가졌던 메테르니히는 진지한 협상보단 냉소와 조롱으로 일관했다. 이때 메테르니히는 프로이센의 영토 회복, [[라인 동맹]] 해체, 프랑스 영토를 [[자연국경]] 내부로 제한, 오스트리아에 일리리아를 반환할 것 등을 요구했다. 이미 프랑스 내부의 명사들은 자연국경 수준에서 전쟁을 멈출 것을 요구하고 있었고 [[샤를모리스 드 탈레랑페리고르|탈레랑]]을 통해 이를 들어서 프랑스의 사정이 얼마나 나쁜지를 알고 있던 메테르니히는 강경하게 나갈 수 있었다. 특히 메테르니히는 8월 10일까지 프랑스가 오스트리아에서 제시한 강화조건을 수용하지 않으면 오스트리아는 전쟁에 참여하겠다고 선포하며 당장 수용해줄것을 요구했다. 이에 나폴레옹이 흥분하여 외쳤다. >"나의 치세는 내가 더는 강력하지 못하여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를 멈추는 날 끝날 것이다. (...) 나는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알고 있다. (...) 그러나 나는 한 뼘의 땅도 넘겨주지 않겠다. 왕좌에 앉을 운명을 타고난 그대의 군주들은 큰 마음 먹고 스무 번 패해도 되고 언제나 수도로 되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다. 나는 나 자신의 힘으로 출세한 군인이기 때문이다." 사실 백년단위로 집권하며 정통성을 쌓은 여러 왕가들과 달리 나폴레옹은 자수성가한 군사독재자였고, 그 지지율은 전쟁의 승리와 약탈품 덕이 컸던지라 틀린말은 아니었다. 이때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를 배신자로 비난하며 메테르니히의 어줍잖은 개입만 없었으면 프로이센과 러시아가 전쟁에서 이탈했을 것이라고 소리쳤다. 나폴레옹은 일리리아의 오스트리아 귀속 정도는 동의했지만 메테르니히는 오스트리아령 이탈리아의 반환, [[바르샤바 공국]]과 [[라인 동맹]]의 해체를 끈질기게 요구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이를 무조건 항복 요구로 받아들여 끝까지 거부했다. 특히 나폴레옹은 자신이 바우첸과 라이헨바흐에서 갓 승리를 거두었는데 그런 바보같은 조건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고 하자 화가 난 메테르니히는 그를 싸늘하게 비웃었다. >"폐하의 병사들을 보았습니다. 모두 어린아이에 불과하더군요." 이때 나폴레옹의 분노가 폭발하면서 삼각모자 사건이 벌어졌다. 메테르니히는 나폴레옹이 모자를 구석으로 집어던지며 벌컥 화를 냈다고 했고 나폴레옹은 자신이 실수로 모자를 떨어뜨렸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폴레옹보다 지위가 낮은 메테르니히가 나폴레옹에게 화가 나서 나폴레옹의 모자를 주워주지 않았다는 것. 이에 나폴레옹의 분노가 결정적으로 폭발하였고 나폴레옹은 자신의 모자를 걷어차면서 다시 메테르니히에게 외쳤다. >"그대는 군인의 정신이 어떤지 전혀 모르오. 나는 전장에서 성장했소. 나 같은 사람은 백만 명의 목숨도 개의치 않소." 이에 메테르니히는 어이없어하며 전 유럽이 이 말을 듣도록 모든 방문과 창문을 열어야 한다고 비웃었다. 그 다음 메테르니히는 나폴레옹에게 황제가 개인의 야망을 위해 프랑스인의 생명을 러시아에서 희생시키지 않았느냐고 그를 비난했다. 그러자 나폴레옹은 자신은 겨우 30만명만 잃었으며 프랑스인은 그중 십분의 일 미만이고 폴란드인과 독일인이 더 많이 죽어 줬다고 맞받아치며 그를 모욕했다. 이 말을 들은 메테르니히는 화가 치밀어 결국엔 냉정을 잃고 소리쳤다. >"폐하께서는 지금 독일인과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모양입니다!" 이성은 잃은 양자는 서로에게 미친듯이 비난과 저주를 퍼부어댔다(비밀회담으로 시작했던 것이 악을 써대는 통에 사람들이 회담을 알게 되버리기도 했다) 나폴레옹은 자신이 제위를 잃으면 온 세상이 폐허에 묻힐 것이라고 소리쳤고 메테르니히도 지지 않고 나폴레옹에게 그를 타락한 인간이라고 욕했다. 나폴레옹은 메테르니히에게 가롯 유다 역할을 하는 대가로 영국이 얼마를 줬느냐고 조롱했는데 영국에서 300만 파운드 이상을 전쟁 비용으로 받은 터라 메테르니히는 이때만큼은 뭐라 말을 못하고 침묵했다. 결국 9시간 동안 으르렁거린 끝에 나폴레옹은 일리리아 외엔 어떤 영토도 내놓을 수 없다고 못박으며 협상을 거부했고 메테르니히도 협상이 파토난 것을 알고는 더 할 말이 없음을 선언했다. 나폴레옹이 마지막으로 쏘아붙였다. >"오, 고집을 꺾지 않는군. 여전히 내게 지시할 생각이야. 그렇다면 좋소. 전쟁이오! 빈에서 다시 봅시다!" 회의가 끝난 8시 반, 메테르니히는 "폐하, 당신은 이미 몰락했습니다. 여기에 오면서 나는 그러리라 예감했지만 이제는 그것을 확신합니다!" 라고 쏘아붙였다.[* 출처: A. S. Britt, "The Wars of Napoleon", p. 127.] 그리고 회의의 경과를 묻던 [[루이알렉상드르 베르티에]]에게 "황제는 모든 것을 충분히 분명하게 밝혔소. 모든 게 황제에게 달렸소." 라고 말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